KPI뉴스 - 냉전 해체의 주역…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 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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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해체의 주역…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 서거

김당
기사승인 : 2022-08-31 10:07:46
소련 공산당 마지막 서기장·대통령으로 개혁·개방정책 추진
'철의 장막' 제거해 '냉전해체' 평가…자국선 '소련 멸망시킨 매국노'
말년에 NATO 확장문제로 푸틴과 설전…"나토-미국이 약속 깨" 비난
냉전 해체의 주역인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비에트 연방(소련) 대통령이 향년 91세로 서거했다.

▲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왼쪽)이 향년 91세의 나이로 모스크바 중앙임상병원에서 별세했다고 러시아 언론들이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사진은 2004년 12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독일에서 기자회견을 시작하며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과 이야기 나누는 모습. [AP 뉴시스]

러시아 타스, 스푸트니크 통신 등은 30일(현지시간) 러시아 중앙 임상병원이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이 오랜 투병 끝에 이날 저녁 사망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고르바초프는 1931년 소비에트연방 스타브로폴 지방에서 태어났으며, 당중앙위원과 농업 담당 서기, 정치국원을 거쳐 1985년 3월에 권력 서열 1위인 당서기장으로 선출됐다.

젊은 나이에 최고 권력자가 된 고르바초프는 브레즈네프 독트린 폐기를 선언하며 이런 연설을 남겼다.

"하나의 완벽한 공산주의 모델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그 누구도 진리를 독점할 수 없다. 한 국가의 장래와 그 체제는 그 나라 국민들만이 정할 수 있다. 어느 나라도 타국의 국내 상황에 간섭하거나 압력을 가해서는 안 된다."

고르바초프는 소련의 마지막 공산당 서기장이자, 처음이자 마지막 대통령으로서 전체주의적 사회주의 체제를 무너뜨린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을 추진했다.

그는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와 이듬해 동서독 통일을 사실상 용인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을 서구와 동구로 분단한 '철의 장막(Iron Curtain)'을 유혈 사태 없이 제거함으로써 서방에서는 냉전 해체의 주역으로 높이 평가받는다. 이에 대한 업적으로 199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고르바초프의 개혁 노선은 공산당 일당 독재였던 소련과 동유럽을 사회민주주의 국가로 바꾸는 것이었다. 하지만 날로 악화하는 경제난 속에 군부의 쿠데타 시도 등으로 정국 혼란을 겪은 소련이 1991년 12월 해체됨으로써 그는 완전히 권력을 상실했다.

특히 고르바초프가 연방에서 독립과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공화국들에 대해 광범위한 자치를 허용한 이후 발트 3국과 우크라이나 등의 공화국들에서 독립파가 무더기로 공화국 최고회의에 진출해 소련 해체의 단초를 제공했다.

그는 소련 정치 및 경제체제의 문제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글라스노스트(개방)·페레스트로이카(개혁)을 시도했다. 하지만 노멘클라투라(공산귀족)로 불리는 기득권층의 반발과 보리스 옐친 등 신진 세력의 대두를 적절히 통제하지 못해 소련을 붕괴의 길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추진한 개혁정책은 체제 내부에 잠재되어 있던 문제들을 급속히 분출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이런 난맥상에 군부와 관료 등 보수파를 중심으로 한 기득권층이 대거 반발하면서 1991년 8월 구체제로의 복원을 꾀하는 쿠데타로 이어지게 된다.

당시 러시아 공화국의 대통령이었던 보리스 옐친이 시민의 저항을 이끌어내면서 쿠데타는 사흘만에 실패로 돌아가지만, 고르바초프는 급진 개혁파에게 정국의 주도권을 내주었고, 1991년 12월 연방 해체와 함께 권좌에서 물러났다.

▲ 한국을 수 차례 방문한 고르바초프의 자서전은 '선택'이라는 제목으로 2013년 8월 한국에서 출간되었다. 

이 때문에 서구권을 포함한 자유 진영에서는 냉전을 종식시킨 그를 높이 평가하지만, 정작 러시아에서는 '초강대국 소련을 멸망시킨 매국노'라는 부정적 평가가 많다. 블라디미르 푸틴이 당선된 2000년 러시아 대통령 선거에서 그의 지지율은 1%도 안 되었다.

그는 2017년 6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확장을 두고 푸틴과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푸틴은 고르바초프가 순진하게 나토 확장 금지를 문서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토가 확장되어 러시아의 안보가 위험해졌다고 주장했고, 고르바초프는 옐친-푸틴 시절에 이미 나토가 확장되었다고 주장했다.

지난 2월에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에 전쟁 위기가 고조된 가운데, 고르바초프는 소련 붕괴 이후 워싱턴이 "오만하고 자신감이 높아져 나토 군사 동맹이 확대됐다"며 나토와 미국이 자신과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했던 약속을 깼다고 비난했다.

한국을 수 차례 방문한 그의 자서전은 '선택'이라는 제목으로 2013년 8월 한국에서 출간되었다. 

부인 라이사 여사는 1999년 혈액암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낙관주의자로 고르비(Gorbi)라는 애칭으로 불린 그는 모스크바 외곽의 전원주택인 다차에서 여생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KPI뉴스 / 김당 대기자 dangk@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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