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뉴스 - [강준만의 직설] 10대 아들은 왜 '페미'에 분노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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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직설] 10대 아들은 왜 '페미'에 분노할까

UPI뉴스
기사승인 : 2022-05-30 11:14:26
페미니즘 교육과 여학생 우대에 대한 반발
유튜브 중심 '증오·혐오 마케팅' 영향도 작용
정면대응 못한 우리 사회 무능이 더 큰 이유
"근데 지영아, 선생님은 벌써 눈치채고 있었는데 지영이는 모르는 것 같네? 짝꿍이 지영이를 좋아해....남자애들은 원래 좋아하는 여자한테 더 못되게 굴고, 괴롭히고 그래. 선생님이 잘 얘기할 테니까 이렇게 오해한 채로 짝 바꾸지 말고, 이번 기회에 둘이 더 친해지면 좋겠는데."

조남주의 베스트셀러 <82년생 김지영>(2016)에 나오는 말이다. 선생님이 지영이를 집요하게 괴롭힌 짝꿍 남학생을 크게 혼낸 건 잘한 일이었지만, 이 말은 납득하기 어렵다. 김지영은 82년생이고 조남주는 78년생이니, 아마도 80년대 중후반에 일어났던 일 같은데, 그 시절까지도 그런 인식이 일반적이었던 걸까?

"싫어요. 너무너무 싫어요"라고 답한 지영이의 뜻을 선생님이 받아들여 짝꿍을 바꿔주었으니 다행이긴 하지만, 선생님의 '짝꿍 남학생'을 위한 변명은 매우 잘못된 것이었음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겠다. 실제로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학교에선 오늘날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곤 했다. 다음 증언을 들어보자.

"1984년, 초등학교 1학년 반장선거 때다. 43표 가운데 28표를 얻었으니 당연히 반장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6표를 얻은 친구가 반장이 됐다. 담임 선생님의 설명은 간단하고 명료했다. '여학생은 반장은 안 되니까 부반장 하면 되겠다.' '여학생은 왜 반장이 될 수 없어요?'라고 따져 묻지 못했다. 성별을 이유로 지극히 공식적으로 차별당한 첫 기억이다."(박주희, <한겨레>, 2022년 4월 25일)

격세지감(隔世之感)이다. 그런 차별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오늘날엔 갈등의 양상이 크게 달라졌으니 말이다. 2021년 5월 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와 하루 만에 답변 기준(20만명)을 넘긴 글이 있었다. "교사 집단이 은밀하게 페미니즘을 학생들에게 주입하고자 사상 주입이 잘 통하지 않는 학생들에겐 따돌림을 당하게 유도하고 있다"는 글이었다. 약 열흘 후 성차별교육폐지시민연대는 청와대 앞에서 일부 교사집단이 학생들에게 페미니즘 세뇌교육을 했다고 주장하며 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기도 했다.

별로 믿기지 않는 주장이긴 하지만, 이렇듯 학교가 페미니즘 문제로 큰 갈등을 겪고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2021년 7월에 전국 초중고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학교 내 페미니즘 백래시와 성희롱·성폭력에 대한 교사 설문조사' 결과를 보자. 이 조사에 따르면 전체 교사의 34.2%(여성 37.5%, 남성 19.6%)가, 20대 여교사 중 66.7%가 최근 3년간 페미니즘에 대한 보복성 공격(백래시)을 당한 적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백래시 가해자는 학생(66.7%, 복수응답), 동료 교사(40.4%), 학교 관리자(18.7%) 순으로 많았다.

이런 갈등은 학교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변호사 김재련은 중2 아들이 이런 질문을 던졌다고 털어 놓는다. "엄마 페미니스트야? 페미들은 왜 남자를 조롱하고 미워해? 심지어 길에 쓰러진 여자를 도와줘도 성희롱 했다고 고소한다잖아. 엄마도 남자들 싫어해?"(<중앙일보>, 2022년 2월 7일)

어느 40대 엄마는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을 퇴근길에 들고 귀가했는데, 그 책을 발견한 중2 아들이 "엄마도 페미야?"라고 따지듯 물으면서 책을 잡아채더니 자신의 책상 서랍에 집어넣고 A4 용지에 '봉인(封印)'이라는 두 글자를 써서 붙였다고 한다. 종이를 찢으면, 엄마와 나 사이는 이제 끝이라는 위협과 함께.(<조선일보>, 2022년 2월 19일)

도대체 왜 이런 어이 없는 일이 벌어지게 된 걸까? 그간 제기된 이유는 크게 보아 두가지였다. 첫째, 학교에서의 페미니즘 교육과 '여학생 우대'에 대한 반발이다. 둘째, 유튜브 등과 같은 새로운 매체들이 페미니즘을 겨냥해 퍼부은 '증오·혐오 마케팅'의 영향이다. 둘 다 나름의 근거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나는 이 문제를 정면으로 대응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무능과 무기력을 더 큰 이유로 지적하고 싶다.

누구나 다 인정하겠지만,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대학은 '입시전쟁'이라고 하는 한국형 계급투쟁의 주요 관문이다. 학교는 우선적으로 보다 나은 대학을 들어가기 위한 과정으로서의 의미가 절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페미니즘을 둘러싼 갈등에 신경 쓸 뜻도 겨를도 없다. 즉, 페미니즘 갈등은 그간 심각한 논의의 대상조차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대로 좋은가? 좋지 않다! 상호 오해의 소지가 전혀 없는 갈등이라면 끝장을 볼 때까지 싸워보는 것도 좋겠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온갖 오해가 흘러 넘치지만, 양쪽 모두 자신이 옳다는 100% 확신을 갖고 강한 주장만 할 뿐 차분하고 부드러운 대화에 나설 생각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아무도 나서려고 하지 않는다. 양쪽 모두로부터 욕을 먹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욕 좀 먹으면 어떤가. 오해로 인한 싸움만큼 비극적인 게 없다는 데에 동의한다면 기존의 편가르기에 의심의 시선을 보내면서 아예 불통의 영역으로 고립돼 있는 페미니즘 갈등에 소통을 시도하는 바람을 불러 일으켜야 하지 않겠는가.

▲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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