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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직설] 가족 내 '정치 전쟁', 슬기로운 해소법은?

UPI뉴스
기사승인 : 2022-03-28 14:50:09
선량한 시민들·가족 사이에 벌어지는 정치전쟁
'화이부동'의 원리로, '관용적 타협' 시도해보길
중국의 마오쩌둥은 1938년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라고 한 독일의 전쟁 이론가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의 책을 읽고 나서 이런 말을 남겼다. "전쟁은 정치이며, 정치는 다른 수단으로 행하는 전쟁이다....정치는 무혈의 전쟁이요, 전쟁은 유혈의 정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에겐 정치도 결코 무혈의 전쟁은 아니었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을 죽인 유혈의 전쟁이었다. 그런 탓에 인용하기 꺼려지긴 하지만, 오늘날 정치가 '무혈의 전쟁'이라는 건 상식이 되고 말았으니 어쩌겠는가. 

지난 대선은 전쟁이었다. 이 전쟁은 정치판을 넘어서 선량한 시민들 사이에서도 벌어졌고, 더 나아가 사랑하는 가족 내에서도 벌어졌다. 전쟁을 벌이는 양 진영 모두 "저들이 집권하면 나라가 망한다!"를 외쳐댔으니, 누가 집권하건 나라는 망하게 되어있는 셈이었다.

망국(亡國)을 절박하게 느낀 탓인지 아니면 성격 탓인지는 몰라도 사석에서 꼭 대선 이야기를 꺼내면서 비분강개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었다. 출판인 김영준은 2월 하순 한겨레 칼럼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치 이야기는 친구들 사이에서는 금기라고 하는데 요즘은 가족들 사이에서도 금기가 되는 중인 듯하다. 모두가 조심하는데도 기어이 뭔가 신랄한 논평을 꺼내고야 마는 분들이 있다. 이들은 정치적 입장차로 사적인 관계에 생길 위험보다 상대를 계몽시켜 생기는 공익이 더 크다고 보는 것이다. 그럼 좋겠지만, 계몽이 말로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정치에 관한 한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은 드물다. 반면 사람을 화나게 하는 건 한두 마디면 충분하다."

맞다. 한두 마디면 충분하다. 대선이 끝난지 1주일 후 ‹오마이뉴스›엔 정의당원 아내와 민주당 지지자 남편 사이에서 벌어진 말다툼에 관한 글이 실렸다. 대선이 끝난 다음날 아침 남편이 "이게 다 정의당 때문이야!"라고 원망하는 말을 한 것에 기분이 상한 아내는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우리 집은 선거때만 되면 갈등이 증폭한다. 지지하는 당이 다르고, 지지하는 후보가 다르기 때문이다. 한 집에서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 하나. (중략) 이재명이 패배한 게 왜 정의당 때문인가. 그동안 참고 살았지만 더 이상은 못 참겠다."

그러나 이 부부는 그날 오후에 화해하는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었다고 하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는 정의당과 민주당 지지자 간의 갈등인지라 민주당과 국민의힘 지지자들 간의 갈등에 비해 강도가 훨씬 약했을 것이다. 게다가 세대 차이로 인한 갈등은 해결이 더 어려운 것 같다.

편의점을 운영하는 논객 봉달호는 대선 기간 중 어머니와의 갈등으로 인해 '가족 단톡방'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선거가 끝나면 단톡방 다시 만들고 어머니를 모셔야겠다. 정치 말고도 우리는 할 이야기가 많으니까. 흔한 말로, 사랑하며 살기에도 시간은 부족하니까."

맞다. 우리 모두 정치 말고도 할 이야기가 오죽 많은가. 이런 생각을 하던 차에 한국언론학회에서 보내준 새 논문 안내 메일에서 다음 제목에 눈길이 간 건 당연한 일이었다. '정치적 이슈로 인한 가족 내 세대 갈등에 대한 자녀들의 대응: 갈등과 모순, 그리고 대처의 유형.' 부산대 교육인증원 강사 최창식이 발표한 이 논문을 재미있게 읽었다.

이 논문에 따르면,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수행한 심층 인터뷰 결과, 자녀 세대가 경험한 갈등의 유형은 '암묵적 긴장', '가식적 타협', '적극적 대립', '노골적 충돌' 네가지로 나타났다. 내가 가장 바람직하게 여긴 건 '가식적 타협'이었는데, 이 유형에 해당하는 한 대학생의 말을 들어보자. "(보통 대화의 끝은) 저의 가식적 수긍으로 끝나죠. 그냥, 뭐 다른 사람이면 모르겠는데, 가족이고. 오랜 본인의 생각이 잘 안 바뀌실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앞에서는 '네, 맞습니다' 하면 그냥 여기서는 그 이야기로 갈등이 빚어질 일은 없으니까."

그런데, 과연 나이가 든 부모라서 생각이 잘 안 바뀌는 걸까? 내가 장담하지만, 그 누구와 정치적 논쟁을 하건 나름의 확신을 가진 사람은 생각을 안 바꾼다. 그런 사람과는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게 최상이지만, 어쩔 수 없이 하게 된다면 그냥 가볍게 수긍해주는 게 좋다. 그런데 그건 '가식적'인 게 아니다. '관용적'인 것이다. '가식'이란 말을 그런 식으로 쓰기 시작하면 모든 타협, 아니 이 세상 모든 예의범절마저 가식적인 게 되고 만다. 

이제 지방선거가 다가오고 있으니, 또 한번 작게나마 가족 내 '정치전쟁'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벌어질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나는 '관용적 타협'을 적극 추천하고 싶다. 평소 지인들과의 대화에서 이 방식을 자주 써온 경험자로서 말씀드린다면, 가벼운 수긍은 건성으로 수긍해주는 게 아니다. 건성인 걸 알면 상대방이 오히려 더 화를 낸다. 내가 생각하는 가벼운 수긍은 "동의하지는 않지만 당신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의미다. 문자 그대로,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원리다. 괜한 싸움 하지 말고, 일단 시도해보시라. 자꾸 해보면 연기력이 늘면서 포용력이 커진다는 걸 실감하실 게다.

▲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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