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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직설] 내로남불은 반(反)민주적 악행이다

UPI뉴스
기사승인 : 2021-10-28 09:09:51
"내가 하면 선, 네가 하면 악" 발상 민주주의 죽여
선악 이분법에 중독된 유권자들도 공범으로 가세
"익숙한 것은 익숙하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잘 모르게 된다."

독일 철학자 헤겔의 말이다. 뻔한 말 같으면서도 곱씹어볼수록 의미심장하다. 우리는 매우 잘못된 일일지라도 이미 익숙해진 것에 대해선 그러려니 하고 그냥 넘어가는 경향이 있으니 말이다. 이른바 '내로남불'도 바로 그런 경우가 아닌가 싶다.

나는 1년 전 출간한 <권력은 사람의 뇌를 바꾼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문재인 정권의 내로남불 사례들을 일일이 정리하다가 중도에 그만 두고 말았다. 굳이 지적할 것도 없이 거의 모든 게 내로남불이었기 때문이다." 이 말로 인해 당시 문 정권 지지자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이젠 이 말에 시비를 걸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실제로 문 정권 인사들이 밥 먹듯이 내로남불을 저지른다는 게 충분히 확인된 탓도 있겠지만, '익숙 효과'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무슨 일이건 익숙해지면 무뎌지는 법이다. 포털에서 내로남불을 검색해보시라. 내로남불이 정치권의 일상용어가 되었다는 걸 쉽게 확인할 수 있을 게다. 무조건 상대편을 비방하기 위한 상투어로 오·남용되는 경우도 많다 보니 내로남불의 심각성에 대한 문제의식이 희박해진다.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이 <정책의 배신>(2020)에 이어 지난 8월 출간한 <정치의 배신>을 읽으면서 가장 반가웠던 게 '내로남불 다시보기'를 제안한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여권뿐만 아니라 야권을 향해서도 내로남불을 중단하자고 호소한 게 인상적이었다. 그는 지난 4월 재보궐선거의 부산 유세에서 유권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러분도 박형준 시장이 당선된 후에는 '우리 주니 하고 싶은 거 다 해'라며 무조건 편드시겠습니까? 우리가 만든 시장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들리면 좌표 찍고 몰려가 욕하고 협박해 입을 닫게 하시겠습니까? 그러지 말아주십시오. 우리는 뭘 해도 옳고 너희는 뭘 해도 틀렸다는 진영논리와 내로남불의 정치를 먼저 깨주십시오. 그게 우리 정치의 희망을 얘기하는 시작입니다."

왜 윤희숙은 이런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을까? 정책전문가로서 정치에 입문한 후 "정치가 안바뀌면 정책도 의미 없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좋은 정책을 설계하면 세상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지만, 여의도 생활 1년만에 자신의 그런 '순진과 무지'가 깨졌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정치가 지금처럼 비합리적인 한 아무리 좋은 정책을 공무원과 전문가들이 고안해내도 정치과정을 뚫어낼 수 없습니다. 권력의 정점에 있는 청와대가 생각하는 정치가 무엇인지에 따라 나라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현재의 정치는 '정치의 배신'이라는 말도 너무 온건하다 싶을 정도로 원래의 목적을 상실한 지 오래다. 노골적인 '이권 투쟁'의 모습에 가깝다. 그걸 감추기 위해 화려한 수사법을 구사하지만 그건 열성 지지자들 또는 신도들을 묶어놓기 위한 술수일 뿐이다. 윤희숙의 표현에 따르자면, 바로 다음과 같은 정치다.

"상대를 죽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치, 그러니 일관된 원칙은 존재하지도 존중하지도 않는 정치, 상대에 따라 안면을 바꾸기 일쑤고 자기편만 챙기는 정치, 당장 표에 도움이 안 되는 미래 세대와 사회의 지속가능성에 대해서는 관심 한 톨도 없는 정치, 국민들 삶에 어떤 문제가 불거지면 그제야 그것에 관심을 갖지만 표계산에 따라 임기응변으로 대처하는 정치."

물론 이게 정치인들만의 탓은 아니다. 전부는 아닐망정 선악 이분법에 중독돼 있는 많은 유권자들도 사실상 공범으로 가세하고 있다. 자신이 선과 정의의 편이라고 믿으면서 상대편을 '적폐'로 보게 되면 내로남불은 악덕이 아니라 미덕이 되고 만다. 그렇다고 해서 유권자들을 무작정 나무랄 수는 없으니 윤희숙이 했던 것처럼 유권자들에게 끊임없이 호소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를 거부하고 파시즘을 원한다고 그런다면 그건 별도로 논의해볼 문제이겠지만, 그게 아니라 민주주의를 원한다면 답은 이미 나와 있지 않은가.

내로남불은 반(反)민주적 악행이다! 우리 인간의 기억력은 의외로 부실한 만큼 얼마든지 내로남불을 저지를 수 있다. 그런 실수는 곧장 바로 잡으면 된다. 문제는 내로남불임을 알면서도 상습적으로 저지르는 내로남불이다. 똑같은 언행이라도 "내가 하면 선(善)이지만 네가 하면 악(惡)"이라는 발상은 민주주의를 죽인다. '밥그릇 쟁탈' 이외엔 그 어떤 의미도 없는 집단적 패싸움을 해보자는 게 아니라면 내로남불을 두렵게 생각해야 하지 않겠는가.

▲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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