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뉴스 - [이원영 칼럼] 최숙현의 죽음, 우리 안의 민주주의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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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영 칼럼] 최숙현의 죽음, 우리 안의 민주주의를 묻다

이원영
기사승인 : 2020-07-07 15:09:25
목숨 던져야 귀를 기울이는 야만성
최숙현 선수의 죽음에 부산 떨지만
한국사회 고질화된 비민주성 여전
철인 3종경기 유망주 최숙현 선수의 안타까운 죽음에 많은 사람들이 애통해하고 있다. 수십 년째 이어지고 있는 우리 체육계의 뿌리깊은 폭력이 근절되지 않고 있는 데 놀랐고, 불과 1년 전에 빙상연맹에서 불거진 선수 성폭력 사건으로 인해 스포츠계 인권 문제가 핫이슈가 되었던 게 불과 얼마되지 않았는데도 제도적 폭력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데 또한 분노하고 있다.

최 선수가 감독과 선배 선수에게 지독한 폭언, 폭행을 당하면서 여러 군데 진정도 하고 고소도 했지만 누구 하나 그의 목소리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데가 없음에 절망하고 스스로 꽃다운 청춘을 마감했다.

절규하면서 고통을 들어달라고 할 때는 건성으로 듣거나, 쉬쉬하다가 결국은 한 목숨 던진 후에야 비로소 관련자들이 부산을 떠는 이런 광경을 도대체 언제까지 계속 보아야 할까. 이런 양태는 스포츠계 뿐만 아니라 우리사회 구석구석에서 반복되고 있다. 

최 선수의 죽음으로 한때 호들갑을 떨겠지만 또 세상은 그들을 잊을 것이고, 비슷한 고통과 죽음은 반복될 것이란 절망감이 드는 것은 왜일까. 우리는 정말 우리의 문제를 심각하게 반성하고 무엇이 문제인지 자각이나 해보았을까. 사람이 죽어나가야 비로소 눈길 한번 돌리곤 이내 잊어버리고 똑 같은 비정한 현실이 반복되는 사회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최 선수의 비통한 뉴스를 전해 들으면서 순간적으로 얼마전 인터뷰를 가졌던 김누리 교수(중앙대)가 떠올랐다. 이번 사건을 미리 예언이라도 한 것처럼 우리 사회의 비민주성과 야만성을 지적했기에 그랬다. 그는 오래 살았던 유럽(독일)이라는 거울을 통해 우리사회의 문제점을 통렬하게 제기해 주목받는 인물이다.

많은 시민혁명을 겪었고, 촛불혁명을 통해 세계에서도 인정해주는 정치적 민주주의를 이뤄냈다는 찬사를 받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왜 이렇게 취약한가에 그는 물음을 던졌다.

그는 고민 끝에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주의'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민주주의를 외친 사람이 집에선 완전히 가부장적인 아버지요, 학교에선 권위주의적인 교사요, 회사에선 갑질을 일삼는 상사인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는 지적이다. 그에 따르면 우리 사회는 광장 민주주의와 일상의 민주주의가 괴리되어 있다.

우리사회는 일제 식민통치와 군사독재가 남긴 집단주의, 군사주의, 병영문화가 뿌리깊다. 군대·학교·연예계·방송프로 등에 폭력을 즐기는 야만적인 행태가 자행되는 '일상의 파시즘'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 김 교수의 지적이다. 마치 최숙현 선수의 비극을 예견이라도 한 듯 우리사회의 내재화된 병영문화와 폭력성을 그는 개탄했다.

이렇듯 스포츠계 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에 '파시즘 병영문화'가 골깊게 스며들어 있으니 갑질이 끊이지 않고, 약자들은 그 튼튼하게 연결된 갑질 네트워크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다가 죽어야만 겨우 목소리가 전달되는 야만적인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K팝, K민주주의, K방역 하면서 우쭐해하고 있는 사이에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을'들은 오늘도 신음하는 삶을 살아내고 있고 또 어떤 을의 죽음이 이어질 지 모른다. '갑'들은 을들의 고통과 비명을 그저 자기들의 이익 카르텔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 뿐이다. 그러니 들을 필요도, 존중할 이유도 없이 갑에 의한 파시즘은 지속된다.  

제2,3의 최숙현이 될 위험에 처한 선수들이 아직 많을 것이다. 주민의 갑질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비원과 똑 같은 아픔과 분노를 느끼며 오늘도 생존을 위해 울음을 삼키고 있는 그들 또한 얼마나 많을까.

김누리 교수의 말대로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국가', '파시즘의 일상화'가 당연시 되고 있는 조국이 과연 자랑스러울까. 당신은 민주국가 대한민국의 구성원이 될 자격 있는 민주주의자인가, 최숙현이 삶을 던지며 오늘의 한국인에게 던지는 물음이다.

▲ 이원영 정치·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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