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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가당치 않은 '의료 사회주의자' 낙인 찍기

양동훈
기사승인 : 2020-03-06 10:10:42
이재갑 교수 "전문가 의견이 비선자문으로 비하돼"
이 교수, 박근혜 정부 시절도 메르스 TF에서 활동
"전문가들에 정파성 씌우기는 매우 모욕적인 행위"
코로나19가 발생한 이후 감염병 전문가들은 여러 언론에 소환됐다. 코로나19 관련 가짜뉴스 전파를 막고 전문적인 견해를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 지난달 6일 이재갑 한림대 감염내과 교수가 대한감염학회 주최로 열린 코로나19 관련 언론 간담회에 참석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이재갑 한림대 감염내과 교수도 그 전문가 중 하나다. 이 교수는 낮에는 언론 인터뷰에 응하고 밤에는 환자를 돌보는 생활을 지속해 왔다. 지난 1일에는 "병원에서 아침을 맞은지 벌써 일주일이 되어간다"고 전했다. 많은 언론을 통해 전문가 의견을 전하며 어수선한 코로나 시국에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코로나 알리미'였다.

그랬던 이 교수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전문가의 의견이 비선자문이라는 정치적 프레임으로 비하되다니요. 비선자문은 이제 물러나겠습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이 교수가 이런 글을 남긴 것은 어느 일간신문의 기사 때문이다.

▲ 지난 3일 이재갑 한림대 감염내과 교수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비선자문은 이제 물러나겠다'며 중앙일보 기사를 링크했다. [이재갑 교수 페이스북 캡처]

 


이 신문은 해당 기사에서 대한의사협회 최대집 회장의 입을 빌려, 몇몇 의료인을 '코로나 방역 비선'이라 지칭했다. 정기현 국립중앙의료원장, 김용익 건강보험공단 이사장, 이진석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이 교수,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 등이 언급됐다.

일단 '비선'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 자체가 틀렸고 편향적 시선을 반영한다. 정 원장·김 이사장·이 실장은 '공직'을 맡고 있으며, 이 교수는 중앙사고수습본부 자문 특별보좌단에 참여하고 있다. 엄 교수 역시 청와대 전문가 간담회에 참석했다.

이 신문은 익명의 의료계 소식통을 통해 "김 이사장을 정점으로 한 '의료 사회주의자'들이 대통령 주변에 포진해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또 다른 의료인의 입을 빌려 "이 실장이 비선 라인을 주도한 실세다. 이 실장은 고려대 동문인 이 교수, 엄 교수 등의 자문을 많이 듣는 것으로 안다"고 썼다.

김 이사장, 이 실장, 이 교수, 엄 교수가 '의료 사회주의자'라고 대놓고 저격한 셈이다. 의료 사회주의자라는 이 교수와 엄 교수는 박근혜 정부 시절 메르스가 창궐할 때도 정부의 부름을 받아 활동한 바 있다. 설령 사회주의자라면 어떻다는 것인가. 의사가 의사이면 충분하지 신념과 양심까지 어떤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는 법칙이 존재하는가. '의료 사회주의자'란 문제제기 자체에 어떠한 합당한 이유도 찾기 힘들다.

최대집 회장은 뉴라이트 청년연합 공동대표를 지냈으며, 한나라당 산하 단체에서 일한 경험도 있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태극기혁명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도 지냈다. 2017년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석방하라며 1인시위를 벌였다.

그런 최 회장이 코로나19와 관련해 다양한 발언을 쏟아낼 때, 언론들은 그를 '의협 회장'이라 지칭했지 '태극기 극우주의자'라고 부르진 않는다. 의사라는 직업이 가진 전문성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반면 이 신문은 감염병에 있어서만큼은 의협 회장보다 훨씬 더 전문가인 감염내과 교수들을 '의료 사회주의자', '방역 비선'이라 거침없이 지칭했다. 우리 사회의 저변에 깔린 '레드 컴플렉스'를 교묘하게 자극해 해당 인물을 흠집내려는 저의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대한감염학회 회장인 유진홍 가톨릭대 교수는 페이스북을 통해 "이렇게 기사를 써도 되나? 이 교수, 엄 교수가 무슨 김용익 사단인 양 함부로... 거의 명예훼손급"이라며 "나는 중국 입국 제한에 대해 두 교수와 반대 의견이었지만, 합당한 근거를 가지고 주장한 것이니까 인정해 주자는 입장이었다"고 밝혔다.

의협은 코로나19 사태 초기부터 중국인 입국 금지를 주장해 왔다. 몇몇 언론들은 이를 인용해 '정부가 전문가의 말을 무시해 사태를 이 지경에 이르게 했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달 10일 대한예방의학회, 한국역학회 등도 외국인 입국 제한 조치는 부작용이 더 크다고 밝힌 바 있다.

4일에는 보건 당국의 '범학계 코로나19대책위원회'가 해체됐다. 교수들이 비선 조직으로 몰린 상황 때문이다.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전문가들에게 굉장히 모욕적인 일"이라며 "전문가들에게 정파적인 이미지를 씌워 자문 역할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전했다.

코로나19가 나날이 확산하는 상황이다. 다양한 전문가들이 자신의 전문적 견해를 제시하고 이 중 좋은 아이디어들을 취사선택하는 과정은 필수적이다. 특정 전문가들에 '비선', '의료 사회주의자' 낙인을 찍고 입을 막는 행동은 사회적으로 무슨 이익이 있는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 양동훈 인턴기자

KPI뉴스 / 양동훈 인턴 기자 ydh@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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