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뉴스 - [데스크시각] 기본소득은 가야 할 길…문제는 '사회적 대타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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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 기본소득은 가야 할 길…문제는 '사회적 대타협'

안재성 기자
기사승인 : 2026-03-20 17:40:40
청년층에게 더 가혹한 'AI 혁명'…중·장년층도 안심할 순 없어
'노사정 대타협'으로 세계적인 복지국가 이룬 스웨덴 참고해야

기본소득은 한때 '포퓰리즘' 논쟁 한가운데 있던 정책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경기지사 시절 주창해 '색깔론'까지 덧씌워졌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다르다.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되고 있다. 인공지능(AI)이 사람의 일자리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그 속도는 예상을 뛰어넘는다. 

 

"기본소득은 시기상조"라는 말은 일견 맞으면서도 틀린 말이기도 하다. 당장은 어렵지만, 결국 가야 할 길이기 때문이다. 전면 도입이 불가능하더라도 AI가 일자리를 대체하는 속도를 고려하면, 준비를 미루는 것도 위험하다.

 

이런 맥락에서 20일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의 발언은 시의적절하다. 박 후보자는 이날 "기본소득의 즉각적인 전면 도입은 어렵다"면서도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 사업의 성과를 검토하는 등 길게 보고 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올해 정부의 복지 예산(보건·복지·고용 분야 총예산)은 약 270조 원이다. 이를 전부 활용해 만 18세 이상 성인 인구(약 4300만 명)에게 기본소득으로 나눠준다면 1인당 연간 628만 원, 매월 52만 원씩 지급된다.

 

정부가 정한 최소한의 생활비, 기초생활수급자 생계급여(82만 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각 성인에게 생계급여만큼의 기본소득을 주려면 연간 약 423조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올해 예산(약 728조 원)의 58.1%에 달한다.

 

세금을 대폭 늘리기 전에는 마련하기 어려운 규모이고, 복지예산 전부를 기본소득으로 돌릴 수도 없는 일이다.   

 

▲ 인공지능(AI)로 인해 많은 일자리가 사라지는 중이며 그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질 전망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그렇다고 기본소득 논의를 미룰 수 없다. AI시대에 기본소득은 필연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2년 7월부터 3년 간 청년층 일자리가 21만1000개 줄었다. 이 가운데 98.6%인 20만8000개가 AI 고노출 업종에서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50대 일자리 수는 20만9000개 늘었는데 이 중 69.9%인 14만6000개가 AI 고노출 업종에서 늘었다.

 

과거 청년층이 주로 수행하던 자료 조사, 단순 코딩, 데이터 입력 등 단순 반복형 지식노동은 AI가 더 잘 수행하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AI가 만들어낸 결과물을 검증하는 전문성과 조직 관리 능력을 갖춘 시니어 계층은 되레 수요가 늘었다.

 

한은에 따르면 향후 10년 간 AI에 의해 대체될 수 있는 일자리 수는 약 341만~390만 개 가량이다. AI 덕에 100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새로 생겨날 것으로 기대되나 대체되는 숫자에는 미치지 못한다.

 

가장 큰 피해자는 청년층이 될 것이다. 이미 정보기술(IT), 회계, 디자인, 마케팅 등 여러 분야의 기업들이 신입직원 채용을 최소로 줄이고 있다고 한다. 이창용 한은 총재가 "내가 살 날이 얼마 안 남은 게 다행이다. 앞으로 젊은 사람들은 참 어렵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걱정할 정도다.

 

중·장년층도 안심할 순 없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는 2029년까지 범용 AI(AGI)를, 2030년대에는 초지능 AI(ASI)를 개발할 수 있을 거라고 예측했다. 초지능 AI 시대에 버틸 수 있는 일자리는 몇 개나 될까? 

 

사회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새로운 안전망이 불가피하다. 기본소득은 그 유력한 선택지 중 하나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도 "앞으로 일은 AI와 로봇이 하고 사람은 기본소득을 받아 생활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제는 방향이 아니라 속도와 방식이다. 기본소득을 현실화하려면 세금, 기존 복지제도, 노동 구조 전반을 뜯어고쳐야 한다. 결국 사회적 합의, '대타협'없이는 한 걸음도 나아가기 어렵다. 

 

과거 극단적 갈등을 겪었던 스웨덴의 경험에 힌트가 있다. 스웨덴은 노사분규가 가장 심한 나라였다. 1931년 파업 중인 노동자에게 군대가 발포해 5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1932년 집권한 사회민주당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적극적인 노사 대화를 추구했다. 약 2년 간 협상을 거쳐 1938년 역사적인 '노사정 대타협'을 이뤘다. 덕분에 스웨덴은 세계적인 복지국가가 됐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정답을 둘러싼 소모적 논쟁이 아니라, 감당 가능한 해법을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일 것이다. "난 조금도 손해보지 않겠다"는 태도로는 사회적 합의는커녕 갈등만 키울 뿐이다.

  

▲ 안재성 경제 에디터

  

 

 

KPI뉴스 / 안재성 기자 seilen78@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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