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뉴스 - [조용호의 문학공간] "광주의 소년이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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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승인 : 2024-12-06 16:12:51
중국 시인 '왕자신', 한강의 '소년이 온다' 읽고 헌시 집필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 듣고 '광주의 소년'으로 축하
'노벨 위크' 축제 시작됐는데 국내에선 어이없는 비상계엄
"'소년'은 죽지 않고 인류의 가슴 속에서 쉼없이 살아난다"

어처구니 없는 사태가 대명천지 21세기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대통령이 아닌밤중에 '비상계엄'을 발동해 나라를 온통 혼돈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다행히 발빠른 민주적 대처로 그 사태를 막았지만, 여전히 요동치는 상황은 끝나지 않았다. 그나마 이 정도로 선방해낸 것은 지난 비극들을 통해 축적한 민주적 역량일 터이다. 이 힘의 바탕에는 1980년 광주에서 비상계엄 후 일어난 비극의 경험이 자리잡고 있다.

그 뼈아픈 사태를 여러 경로를 통해 되새겼고, 지난 10월에는 한강이 그 비극을 문학으로 승화한 소설 '소년이 온다' 등으로 오랫동안 갈망해왔던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에 이르렀다. 한강의 '소년'은 오늘부터 스웨덴에서 일주일간 진행되는 '노벨 위크'로 다시 한 번 축제 분위기 속에 조명되고 있다. 이 와중에 국내에서는 '소년이 온다'의 비극이 다시 한 번 전개될 뻔한 아찔한 상황을 겪어야 했고, 여진은 아직 남아 있는 형국이다.

 

▲ 중국 대표시인 왕자신(오른쪽, 서정시학 제공)이 한강(노벨상 홈페이지)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 '광주 소년'을 기리는 시편을 집필했다. 

 

중국 대표 시인 중 한 사람인 왕자신(王家新, 1957~ )이 '소년이 온다'의 '소년'은 죽지 않았다고 전해왔다. 그는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직후 '소년이 온다'를 읽고 '광주 소년'이라는 시를 집필했고, 이 시편을 최근 한국에 보내왔다. '서정시학' 겨울호에 게재될 그의 시편을 미리 입수해 살펴보았다. 왕자신은 광주에서 희생당한 소년은 지금 우리 곁에 있다고 말한다.

왕자신은 중국 당대 시단에서 주목할 만한 국제적 시인이다. 비평가이자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그의 시는 중국 교과서에도 수록돼 있다. 후베이성 단장커우(湖北省 丹江口) 시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졸업 후 하방하여 노동했고, '문화대혁명'이 끝나자 우한(武漢)대학교 중문과에 진학했다. 졸업 후 편집인, 교사 등 일을 했다. 2006년부터 중국인민대학교 문과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다수의 시집과 시론, 에세이집, 번역 시집 등 약 50여 권의 저서를 출간했다.

그는 "광주 소년/ 눈물이 앞을 가리네.// 광주 소년/ 군용 트럭에 던져졌고/ 끈적한 피는/ 몇 년이 지나도/ 당신의 글 속에서 배어 나오네."라고 소년을 다시 문학으로 살려낸 한강에게 말을 건네며 시편을 시작한다. 이어 시인은 "광주 소년은/ 진즉 흙 속에서 흙이 되었고/ 부모는/ 백발이 되었네."라고 탄식한다. 한탄은 이어진다. "소년 한 구의 시신/ 장갑차에 깔리고/ 아무도 찾으러 오지 않았네.// 뭉개진 얼굴은 알아볼 수도, 이름도 없어/ 기념비에 들어가지도 못했다네."

소설 이전에 시로 먼저 등단했던 한강은 '소년이 온다' 안에서 소설 속 연극 무대를 빌려 시처럼 이 상황을 음각해놓았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한강은 이어서 거듭 하소한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를 치르지 못해,/ 당신을 보았던 내 눈이 사원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목소리를 들었던 내 귀가 사원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숨을 들이마신 허파가 사원이 되었습니다."

왕자신 시인은 이어서 소년은 죽은 것이 아니라 "누군가는 말하길 그는 아마 죽지 않고/ '실종'되었을 뿐이라고/ 학교에 무단결석하고, 시위에 참여하기 전에/ 할머니에게 뺨을 한 대 얻어맞았을 뿐이라고" 쓴다. 한강은 소설 속에서 소년의 입을 빌려 응답한다.

 

▲ 21세기 대명천지 대한민국 국회의사당에 출현한 군인들(위)과 1980년 광주에 출동한 계엄군. 

 

'더 이상 내가 열여섯 살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어. 서른여섯, 마흔여섯 같은 나이들도 여리고 조그맣게 느껴졌어… 더 이상 나는 학년에서 제일 작은 정대가 아니었어. 세상에서 나를 제일 좋아하고 무서워하는 박정대가 아니었어… 누가 나를 죽였을까, 왜 죽였을까. 생각할수록 그 낯선 힘은 단단해졌어. 눈도 뺨도 없는 곳에서 끊임없이 흐르는 피를 진하고 끈적끈적하게 만들었어. 어디선가 누나의 혼도 어른거리고 있을 텐데, 그곳이 어딜까.'

소년은 이승도 저승도 아닌 중음의 공간을 헤매는 중이다. 한강은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네가 방수 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간 뒤에./ 용서할 수 없는 물줄기가 번쩍이며 분수대에서 뿜어져나온 뒤에./ 어디서나 사원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고 쓴다.

중국 시인은 고개를 젓는다. 소년은 죽은 것이 아니라고, 도처에 살아서 어린 짐승 같은 눈빛을 빛내고 있노라고.

"또 누군가는 그가 죽지 않았다고 믿는다네./ 홀로 또 다른 나라의 광장에 나타난 걸 보았기 때문에/ 또 누군가는 그가 라이프치히에서 밀려드는 학생들과 함께/ 북쪽으로 향하는 기차에 올라타는 걸 보았다고./ 아! 베를린 장벽!// 몇 년이 지났어도, 그는 여전히 그렇게 젊고/ 그렇게 충동적이라네./ 그의 눈에는/ 우리 눈물 흘리게 하는/ 어린 짐승의 빛이 있다네."

한강은 "봄에 피는 꽃들, 버드나무들, 빗방울과 눈송이들이 사원이 되었습니다./ 날마다 찾아오는 아침,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들이 사원이 되었습니다."면서 소년은 "어디서나 사원의 불빛"으로 타고 있다고 쓴다. 왕자신은 소년의 죽음은 불멸의 삶이라는 역설을 봄날의 빛과 여름의 비, 겨울의 눈에 빚대어 노래한다.

"어쩌면 그는 정말로 죽었다네, 영원히 죽었다네./ 우리 봄날의 빛/ 여름의 비/ 겨울의 눈과 함께 죽었다네."

한강의 '소년이 온다'에 바치는 중국 시인의 헌시는 "광주 소년/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물음으로 맺는다. 그 '소년'은 지금 어이없는 비상계엄 사태의 대한민국 한가운데, 수많은 시민들 곁에 같이 있는 셈이다. 소년은 죽지 않았다. 봄날의 빛과 여름의 비, 겨울의 눈, 그리고 여기 대한민국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마당에서 어린 짐승의 눈빛으로 시민들을 지켜보는 중이다.

광주 소년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
글: 중국 왕자신(王家新), 번역: 김영명

광주 소년

눈물이 앞을 가리네.

 

광주 소년

군용 트럭에 던져졌고

끈적한 피는

몇 년이 지나도

당신의 글 속에서 배어 나오네.

(도대체 몇 명이 죽은 건가?
이건 하나의 미스터리
지금까지도 미스터리)

광주 소년은
진즉 흙 속에서 흙이 되었고
부모는
백발이 되었네.

소년 한 구의 시신
장갑차에 깔리고
아무도 찾으러 오지 않았네.

뭉개진 얼굴은 알아볼 수도, 이름도 없어
기념비에 들어가지도 못했다네.

누군가는 말하길 그는 아마 죽지 않고
'실종'되었을 뿐이라고
학교에 무단결석하고, 시위에 참여하기 전에
할머니에게 뺨을 한 대 얻어맞았을 뿐이라고

그 얼얼한 따귀

"한 대,
두 대,
세 대……"*

당신은 부푼 뺨을 감싸고 있는가?

누가 우리의 광주 소년을 죽였는가?

또 누군가는 그가 죽지 않았다고 믿는다네.
홀로 또 다른 나라의 광장에 나타난 걸 보았기 때문에
또 누군가는 그가 라이프치히에서 밀려드는 학생들과 함께
북쪽으로 향하는 기차에 올라타는 걸 보았다고.
아! 베를린 장벽!

몇 년이 지났어도, 그는 여전히 그렇게 젊고
그렇게 충동적이라네.
그의 눈에는
우리 눈물 흘리게 하는
어린 짐승의 빛이 있다네.

어쩌면 그는 정말로 죽었다네, 영원히 죽었다네.
우리 봄날의 빛
여름의 비
겨울의 눈과 함께 죽었다네.

광주 소년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 제3장은 '일곱개의 뺨'으로, 은숙이가 자백을 강요하는 자에게 일곱 대의 뺨을 맞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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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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